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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김범수 재산?

by 할인꿀팁정보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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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시간에는 국내 3위 부자 카카오 김범수 대하여 포스팅할까 합니다. 김범수님은 전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밝혀 이슈가 되었는데요.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은 널리 알려야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카카오 김범수 프로필부터 살펴보도록 해요!

카카오 김범수

김범수 프로필

카카오 김범수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올해 55세 입니다. 그는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가 무작정 서울로 이사를 온 부모 밑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요. 아버지는 중졸로 막노동과 목공일을 하였고, 어머니는 지방에서 식당일을 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고, 김범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하네요.

 

 

김범수는 건국대학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산업공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는 중학생때 아버지는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누구보다 독하게 공부했다고 합니다. 서울대는 정말 노력이 필요하군요.

 

또한 김범수 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 베서 혈서를 쓰고 무려 3번을...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진짜 힘들 때만 피웠다고 합니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86학번)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보통 가정이 어려우면 공부를 독하게 할법도 한데, 힘들었던 재수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빠졌다고 하네요. 사실 혈서까지 공부하면서 대학에 들어가면 저또한 저렇게 무언가를 찾아 해소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김범수는 학업을 놓았던 것은 아니고 4년만에 학사, 2년만에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게 됩니다

카카오 김범수
카카오 김범수
카카오 김범수

김범수는 이후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김범수는 대학시절 고스톱과 당구를 치며 놀았던 경험을 인터넷에 옮겨보자고 결심합니다. 삼성SDS를 퇴사한 김범수는 1998년 6월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열었습니다.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됩니다.

 

 

그리고 김범수는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습니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내려놓고,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렇게 애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지며,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하게 됩니다. 공부 만큼 노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바로 인생에 진리 아니겠습니까?^^;

카카오 김범수

당시에 큰 애는 고1, 둘째는 중3이었는데 '나도 재수했는데, 애들이 1년 정도 늦게 대학가면 뭐 어떤가' 싶어서 식구끼리 여행다니고, 당구치고, PC방에 다녔다고 하네요. 더 무서운 건 이때 애들한테 아무 것도 못하게 하고 강제로 놀게만 했다고 합니다. 이런 아빠가 최고!!

 

식구 중에 딸이 게임을 별로 못했는데, 아들과 게임 고수인 아내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넷이서 게임을 하다보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PC방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그게 정말 행복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가족과 놀기를 3년, iPhone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카카오 김범수

그리고 바로 카카오톡이 탄생합니다. 본인이 미국에 있을 때 마침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며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옮겨갈 것을 짐작한 그는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위와 같은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신저는 글자수 제한이 있었던 건 둘째 치고 별도의 통신비를 엄청 지불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에는 카카오톡 특유의 편의성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약아빠진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에서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후에 출시한 이모티콘과 부가 기능들이 유명세에 불을 붙여 엄청난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현재는 네이버의 라인과 페이스북의 메신저등 만만치 않은 경쟁사들이 있지만 2014년까지도 경쟁사들의 성장이 더딜 때라서 김범수 의장의 시장 선점이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의 카카오톡이 메신저는 독점했다고 봐야겠죠?

 

이후 2014년 다음과 합병하게 됩니다. 한때 그의 주 파트너가 경쟁사였던 네이버였음을 감안하면 합병이긴 해도 경쟁사와 인연을 맺은게 시대의 아이러니.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뱅크 등 무인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에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이 됩니다. 이 정도면 진짜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라고 볼 수 있네요.

카카오 김범수

그리고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카카오 김범수 재산은 주식 포함 10조원이 넘는 거로 추산됩니다. 절반인 5조를 사회에 기부한다고 밝힌 카카오 김범수님에게 박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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